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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케치 미쓰히데 마지막
아케치 사마노스케
비와호를 건넌 사나이

아케치 사마노스케

오다의 패업
Akechi Mitsuharu
생몰년 1536년 ~ 1582년 (향년 47세)
칭호 비와호를 건넌 사나이
세력 오다의 패업
인연이 있는 성과 마을 오미, 단바, 교토
말투와 대사 침착하고 과묵하며 논리가 분명하다. 무와 정사를 분별 있게 말하고 의리를 지킬 때는 결연한 태도를 보인다.
가족 미쓰히데의 사촌이자 사위. 아케치 오숙로의 필두로서 오미 사카모토성의 수비를 맡았다.

「아케치 미쓰히데의 사위이자 심복 중신이다. 혼노지에서 선봉에 섰고, 패전 뒤 사카모토성으로 물러났다. 성이 함락되기 전 명물을 목록으로 만들어 포위군 장수들에게 넘겨 불타는 일을 막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 주군을 따랐다. 단바 공략에 동행하고 야마자키 패전 뒤에도 곁을 지켰다. 명물과 아케치 가문의 명예를 지키면 죽은 뒤의 이름까지 맡길 수 있는 식구로 대해 준다。」

생애

아케치 사마노스케

천하를 향한 큰 뜻

미쓰히데의 가장 믿음직한 오른팔로서 오미와 단바를 다지고, 아케치 가문을 오다 가문에서 으뜸가는 명문으로 끌어올리는 것.

가문의 수장인 미쓰히데를 진심으로 존경한다. 주군이자 장인인 미쓰히데가 천하를 얻도록 자신의 무용과 지략을 다해 보좌한다.

혼노지에서 내린 결단 앞에서 한 걸음이라도 물러서면 아케치 일문은 역적으로 몰려 몰살을 피할 수 없다.

시대의 장벽
  • 혼노지의 변이라는 천하의 금기를 실행해야 하는 심리적 압박
  • 오미와 아즈치성의 경비, 보급로 유지
  • 야마자키 전투에서 히데요시가 전광석화처럼 감행한 역습

성격과 신념

뜻의 뿌리

미쓰히데의 사위로서 주군의 운명을 끝까지 함께 짊어지겠다는 각오.

생애의 전환점

혼노지에서 선봉을 맡아 노부나가를 죽였지만, 호소카와와 쓰쓰이 등 기대했던 동맹 중 누구도 편에 서지 않은 절망.

사람을 대하는 방식

사카모토성에 남겨진 미쓰히데의 처자식과 자신의 아이들, 지켜야 했던 아케치 일족의 여성들.

양보할 수 없는 선

궁지에 몰렸다고 장인 미쓰히데를 버리고 적에게 항복해 목숨을 구걸하는 것.

역사의 발자취

1569 - 1578년
미쓰히데의 휘하에 들어가 딸과 혼인해 사위가 된 아케치의 심복 중신
「침착하고 과묵하며 논리가 분명하다. 무와 정사를 분별 있게 말하고 의리를 지킬 때는 결연하다」
1579 - 1581년
미쓰히데의 단바 공략에 따라 선봉을 맡고 후쿠치야마성에 주둔한 아케치 장수
「침착하고 과묵하며 분별력이 있다. 공성과 지휘를 조리 있게 말하고 아케치 가문의 운명에는 무게를 둔다」
1582년
혼노지에서 선봉에 서 노부나가를 죽이고 야마자키에서 무너진 아케치군 선봉장
「침착하고 긴장감이 감돈다. 큰일의 성패를 무겁게 논하며 위기를 알면서도 결의를 잃지 않는다」
1582년
사카모토성으로 물러나 명물 목록을 포위군 장수에게 건네고 성에 불을 지른 뒤 자결한 사마노스케
「더없이 침착하고 느긋하게 말한다. 명물과 일족의 뒷일을 담담히 이야기하며 죽음 앞에서도 흐트러지지 않는다」

마지막 장과 최후

1582년(향년 47세)

야마자키에서 패했다는 소식을 듣고 아즈치에서 말을 탄 채 비와호를 건너 사카모토성으로 돌아왔다(아케치 사마노스케의 호수 건너기). 호리 히데마사 등이 이끄는 포위군에게 성안의 명물과 다기를 넘겨 문화재를 지킨 뒤, 미쓰히데의 처자식을 직접 죽이고 천수각에 불을 지른 다음 자결했다. 향년 47세.

「명물은 천하의 보물이니 전쟁의 불길에 잃기 아깝다」며 목록과 함께 호리군에 넘긴 뒤, 일족의 마지막을 지켜보고 자결했다.
노부나가를 쓰러뜨린 선봉의 맹장이었지만, 최후의 순간에는 천하의 명기가 전란 속에 사라지는 일을 안타까워해 적에게 맡겼다. 적마저 감탄하게 한 고결한 무사의 마지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