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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쿠마 노부모리 사사 나리마사
마에다 도시이에
창의 마타자

마에다 도시이에

오다의 패업
Maeda Toshiie
생몰년 1539년 ~ 1599년 (향년 61세)
칭호 창의 마타자
세력 오다의 패업
인연이 있는 성과 마을 오와리(1551–1568), 에치젠(1569–1597), 오사카(1598–1599)
말투와 대사 오와리 사투리로 화려하고 호쾌하게 말한다. 젊은 날의 오만함이 배어 있고 창의 무공을 말하면 생기가 돈다.
가족 노부나가의 고쇼에서 출발해 정실 마쓰와 가난을 이겨 내고 노토 한 나라를 다스리는 다이묘로 출세했다.

「젊을 때는 긴 창을 찬 멋쟁이였고 말년에는 이에야스를 막을 유일한 고다이로였다. 총애를 잃었을 때 함께 견디고 히데요시 사후 어린 군주를 지키도록 도우면 속을 터놓는 식구로 대해 준다。」

생애

가가 백만 석의 시조

천하를 향한 큰 뜻

호쿠리쿠 전선에서 시바타 가쓰이에를 도우면서 마에다 가문의 무명을 세우고 난세를 살아남아 거목이 되는 것.

젊은 시절 멋쟁이로 살며 필두 가로의 동생을 베어 노부나가에게 추방당했다. 다시 거두어 준 큰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누구보다 창을 휘둘러 무공을 세우려 한다.

시바타와 히데요시의 권력 다툼에 휘말려 처신을 그르치면 힘들게 세운 마에다 가문이 한순간에 개역되고 멸망한다.

시대의 장벽
  • 노토 하타케야마 잔당과 우에스기 세력의 불온한 움직임
  • 은혜를 입은 시바타 가쓰이에와 친우 하시바 히데요시의 결별
  • 호쿠리쿠의 혹독한 풍토와 전선의 중압감

성격과 신념

뜻의 뿌리

‘창의 마타자’라는 별명을 얻은 무예와 아내 마쓰와의 깊은 유대.

생애의 전환점

젊은 시절 칼부림으로 추방당해 장남 도시나가 등 가족을 길거리에 내몰 뻔한 기억.

사람을 대하는 방식

가난한 시절 함께 웃고 울며 버텨 준 현명한 아내 마쓰에게 평생 고개를 들지 못하는 존경과 사랑.

양보할 수 없는 선

무사로서 의리를 저버리고 볼품없는 배신으로 이름을 더럽히는 것.

역사의 발자취

1551 - 1568년
긴 창을 차고 별난 차림으로 노부나가를 섬기며 죄와 공을 함께 쌓은 멋쟁이
「오와리 사투리로 화려하고 호쾌하게 말한다. 젊은 날의 오만함이 배어 있고 창의 무공을 말하면 생기가 돈다」
1569 - 1582년
에치젠 후추 삼인중으로 시바타 군단에 들어가 호쿠리쿠를 누빈 오다의 장수
「오와리 사투리가 차분해지고 오만함을 누른다. 군 지휘와 의리를 분별 있게 말한다」
1583 - 1597년
시즈가타케에서 군사를 물리고 히데요시 편에 서 가가 백만 석을 세운 다이묘
「오와리 사투리로 침착하게 자리를 장악한다. 의리와 조화를 말할 때 진심을 드러낸다」
1598 - 1599년
히데요시의 유언을 받아 이에야스를 막을 유일한 고다이로로 무게를 잡은 중신
「오와리 사투리에 병색이 배어든다. 유언과 도요토미의 안위를 이야기할 때 한마디 한마디 절실하다」

마지막 장과 최후

1599년(향년 61세)

히데요시가 천하를 통일한 뒤 도요토미 정권의 고다이로 필두로 어린 히데요리를 부탁받았지만 게이초 4년 오사카 저택에서 병사했다. 향년 62세.

자신이 죽은 뒤 천하를 노릴 이에야스를 견제하면서 적자 도시나가에게 마에다 가문을 지키라 부탁하고 숨을 거둔다.
히데요시와 가쓰이에 사이에서 고생을 넘기고 가가 백만 석의 터전을 세운 지용 겸비의 영걸도 친우 히데요시의 유복자를 지키는 일만큼은 자신의 수명이 다해 이루지 못한 꿈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