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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카와 모토하루 시마즈 요시히로
고바야카와 다카카게
지략의 모리

고바야카와 다카카게

서국·규슈
Kobayakawa Takakage
생몰년 1533년 ~ 1597년 (향년 65세)
칭호 지략의 모리
세력 서국·규슈
인연이 있는 성과 마을 아키(1550–1585), 지쿠젠(1586–1595), 아키(1596–1597)
말투와 대사 아키 사투리로 침착하고 주도면밀하다. 젊어서도 말하기 전에 세 번 생각하고 회의에서 빠뜨리는 것이 없다.
가족 모리 모토나리의 셋째 아들. 고바야카와 가문을 이어 ‘모리 양천’의 지략을 맡아 산요 수군과 외교를 총괄했다.

「모토나리의 셋째 아들이자 양천 가운데 지략을 맡은 축으로 평생을 모리 본가를 위해 바쳤다. 오다가 서진할 때 전투와 화친 사이의 줄타기를 함께하고 히데아키를 양자로 맞아 본가를 위해 희생한 뜻을 헤아려 주면 큰 판을 맡길 식구로 대해 준다。」

생애

모리 양천의 지략

천하를 향한 큰 뜻

냉정하고 침착한 큰 흐름을 읽어 시대를 살피고 모리 본가를 멸망의 벼랑에서 구해 지켜 내는 것.

노부나가가 죽은 뒤 천하의 패권이 히데요시에게 있음을 재빨리 간파했다. 형 모토하루의 강직함을 달래고 히데요시와 손잡아 모리의 혈통과 영지를 평화롭게 지키려 했다.

히데요시와 계속 적대하면 오다의 압도적인 군사력에 모리 종가가 풀과 나무 하나 남기지 않고 멸망한다.

시대의 장벽
  • 히데요시 추격을 주장한 형 깃카와 모토하루 등 강경파를 설득함
  • 히데요시가 친족 양자를 강요하며 히데아키를 고바야카와 가문에 밀어 넣음
  • 도요토미 고다이로로서 천하를 짊어진 무거운 책임과 마음고생

성격과 신념

뜻의 뿌리

세토 내해를 장악한 고바야카와 수군의 기동력과 아버지 모토나리에게 물려받은 심모원려.

생애의 전환점

히데요시의 조카 히데아키를 양자로 받아들여 직계 혈통이 끊긴 통한.

사람을 대하는 방식

용맹한 형 깃카와 모토하루를 향한 존경과 조카 데루모토의 앞날을 걱정하는 마음.

양보할 수 없는 선

감정에 휩쓸려 이길 가망 없는 전투를 벌여 일족을 멸망시키는 것.

역사의 발자취

1550 - 1569년
아버지의 명으로 고바야카와 가문에 들어가 모리 수군을 맡은 양천의 지략가
「아키 사투리로 침착하고 주도면밀하다. 젊어서도 말하기 전에 세 번 생각하고 회의에서 빠뜨리는 것이 없다」
1570 - 1585년
어린 데루모토를 보좌하고 빗추 다카마쓰성 화의로 모리를 지킨 양천의 기둥
「아키 사투리로 침착하고 빠뜨림이 없다. 화친을 권할 때는 논리를 부드럽게 감싸고 결단할 때는 한마디로 판을 정한다」
1586 - 1595년
히데요시에게 신종하고 규슈를 정벌해 지쿠젠을 얻은 뒤 히데아키를 양자로 맞은 고다이로
「아키 사투리로 온화하고 노련하다. 가문을 지킬 큰 계책을 말할 때 한마디 한마디가 모리를 위한 것이며 깊은 속뜻은 드러내지 않는다」
1596 - 1597년
가독을 히데아키에게 물려주고 빈고 미하라에 은거한 양천의 지략가
「아키 사투리로 늙어서도 절실하다. 뒷일을 맡길 때 한마디 한마디 모리와 고바야카와를 위해 말한다」

마지막 장과 최후

1597년(향년 65세)

지쿠젠 나지마의 다이묘를 거쳐 빈고 미하라에 은거했다. 게이초 2년 6월 12일 미하라성에서 평온히 병사했다. 향년 65세.

데루모토에게 「천하의 형세가 어떠하든 결코 경솔히 움직이지 말라」고 유언하고 뒷일을 부탁한 뒤 떠났다.
모리 본가를 지키려고 히데요시의 골칫거리였던 히데아키를 선뜻 양자로 받아들인 지장. 그러나 그 히데아키가 세키가하라에서 천하를 뒤집는 배신을 하고 모리의 영지를 줄이는 결과를 낳은 것을 그는 저승에서 어떻게 보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