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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깃카와 모토하루
모리 데루모토
서국 총대장

모리 데루모토

서국 규슈
Mori Terumoto
생몰년 1553년 ~ 1625년 (향년 73세)
칭호 서국 총대장
세력 서국 규슈
인연이 있는 성과 마을 아키 (1563~1625)
말투와 대사 젊은 군주의 말투. 조부 모토나리를 두려워하고 의지하며 일이 생기면 먼저 어른에게 묻는다.
가족 아키 요시다코오리야마성주. 조부 모리 모토나리의 유훈을 이어받고 깃카와 모토하루와 고바야카와 다카카게의 보좌로 서국 112만 석을 다스렸다.

「조부 모토나리가 세운 주고쿠 열 나라를 물려받았지만 남에게 떠밀려 움직인 수성의 군주. 그와 어울리면 명망에 짓눌려 결단하지 못한 다이묘가 눈치와 행운 속에 어떻게 가문을 깎아 먹는지 알 수 있다。」

생애

서군 총대장

천하를 향한 큰 뜻

조부의 유훈 「모리 양천」 체제를 지키고 서국의 넓은 영지를 평온하게 유지해 모리 가문의 이름을 보전하는 것.

위대한 조부 모토나리는 「천하를 다투려 하지 말라」고 유언했다. 노부나가와 히데요시의 부상에 맞서 두 숙부와 의논하고 일족의 혈통을 지키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다.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서군 총대장으로 떠받들려 오사카성에서 움직이지 못한 채 패전을 맞으면 모리 가문은 개역과 멸망의 위기에 놓인다.

시대의 장벽
  • 이시다 미쓰나리와 안코쿠지 에케이 등의 책동으로 서군 총대장에 옹립된 일
  • 고바야카와 다카카게와 깃카와 모토하루 사후 가문 지도력이 크게 떨어진 일
  •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가혹한 영지 삭감(112만 석에서 스오·나가토 36만 석으로)

성격과 신념

뜻의 뿌리

조부 모토나리에게 받은 「세 개의 화살」 가르침과 서국 제일 명문 모리 가문의 이름.

생애의 전환점

오사카성에 틀어박힌 채 한 걸음도 출진하지 못하고 세키가하라 패전으로 영지 대부분을 잃은 무력감.

사람을 대하는 방식

자신을 받쳐 준 숙부 고바야카와 다카카게를 평생 그리워하고 의지한 마음.

양보할 수 없는 선

조부의 가르침을 어기고 경솔하게 행동해 모리의 혈통을 단절시키는 것.

역사의 발자취

1563~1571년
아버지 다카모토가 일찍 죽고 조부 모토나리의 보호 아래 가문을 이은 모리의 젊은 군주
「젊은 군주의 말투. 조부 모토나리를 두려워하고 의지하며 일이 생기면 먼저 어른에게 묻는다」
1572~1585년
모리를 홀로 받치며 오다와 대치하고 마침내 화친을 청한 당주
「당주의 느긋한 말투로 여지를 남기고 혈기가 서린다. 두 숙부가 권하면 흔들린다」
1586~1599년
태합에게 복속해 고다이로 뽑히고 히로시마성을 세운 대다이묘
「높은 지위와 느긋한 혈기가 있으나 더욱 결단하지 못하고 일을 중신에게 맡긴다」
1600~1625년
서군 총대장 이름을 지고 오사카에 병사를 남긴 채 전후 크게 감봉된 은거 군주
「늙고 느긋한 혈기에 후회가 섞인다. 세키가하라의 눈치 보기와 감봉을 흐리게 말한다」

마지막 장과 최후

1625년 (향년 73세)

하기성을 쌓아 조슈번의 기초를 다지고 은거 뒤 소슈라 이름했다. 간에이 2년 4월 27일 하기 저택에서 천수를 다했다. 향년 73세.

「조슈 땅에서 참고 견뎌 언젠가 천하에 설욕하라」는 마음을 품고 조용히 잠들었다.
「천하를 바라지 않았는데도 서군 총대장으로 추대되어 영지의 3분의 2를 빼앗겼다. 하지만 이때 밀려 들어가게 된 조슈 땅이 260년 뒤 도쿠가와 막부를 무너뜨리는 원동력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