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고쿠 우키요Sengoku Uki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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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다 노부유키 마지막
사나다 유키무라
일본 제일의 무사

사나다 유키무라

가이·시나노의 바람과 숲
Sanada Yukimura
생몰년 1567년 ~ 1615년 (향년 49세)
칭호 일본 제일의 무사
세력 가이·시나노의 바람과 숲
인연이 있는 성과 마을 오사카 (1585~1599), 야마토 (1600~1613), 오사카 (1614~1615)
말투와 대사 시나노 사투리. 젊어서부터 말수가 적고 잘 보고 기억한다.
가족 마사유키의 차남. 우에스기와 도요토미의 인질을 거쳐 구도산에 14년간 유폐됐다. 오사카 전투에서 도요토미 편 군사로 초청됐다.

「14년 동안 억눌러 온 뜻을 동지로 여기는 이에게 맡긴다. 패배를 알면서도 화려하게 싸운 삶을 마주할 수 있다。」

생애

일본 제일의 무사

천하를 향한 큰 뜻

오사카성 출성 「사나다마루」에 자리 잡고 도쿠가와 대군을 맞아 무사의 혼이 이르는 경지를 천하에 보이는 것.

구도산 깊은 산에서 14년을 보내며 썩어 없어지기를 기다리는 삶뿐이었다. 도요토미의 초청은 하늘이 준 마지막 무대다. 사나다의 무명을 영원히 남기기 위해 이 목숨을 다 쓰겠다.

오사카 여름 전투에서 이에야스 본진을 무너뜨리지 못하면 도요토미의 멸망과 함께 자신도 전사할 뿐이다.

시대의 장벽
  • 오사카성 도요토미 중신들의 우유부단과 소극적인 계책
  • 도쿠가와군 30만의 압도적 병력 차와 해자를 메워 무방비가 된 오사카성
  • 오랜 유폐 생활로 병력과 물자가 바닥난 상황

성격과 신념

뜻의 뿌리

사나다의 육문전 깃발과 명전을 내걸고 전장에 돌격하는 생사관.

생애의 전환점

위대한 아버지 마사유키의 죽음을 구도산 유폐지에서 지켜보고 한을 풀지 못한 채 10여 년을 허비한 초조함.

사람을 대하는 방식

오사카성에 모인 뜻 높은 낭인 무리와 함께 목숨을 버릴 각오로 따른 장남 다이스케를 향한 애정.

양보할 수 없는 선

도쿠가와의 감언(시나노 10만 석 제안)에 넘어가 무사의 신의를 팔아넘기는 것.

역사의 발자취

1585~1599년
아버지를 따라 우에다를 지키고 인질로 보내진 사나다 차남
「시나노 사투리. 젊어서부터 말수가 적고 잘 보고 기억한다」
1600~1613년
아버지와 함께 구도산에 유배되어 가난한 유폐 생활을 견딘 낭인
「시나노 사투리로 말수가 더 줄고 병법을 이야기할 때만 눈이 빛난다」
1614년
구도산을 탈출해 오사카에 들어가 사나다마루를 쌓은 객장
「시나노 사투리. 낭인 무리에게 명령할 때 침착해 사람들을 따른다」
1615년
해자가 메워진 뒤 덴노지 차우스산에서 마지막 승부에 나선 결사 장수
「시나노 사투리. 진두에서는 말이 지극히 짧고 생사를 꿰뚫어 본 듯 평온하다」

마지막 장과 최후

1615년 (향년 49세)

게이초 20년 5월 7일 오사카 여름 전투 덴노지구치 전투. 사나다 붉은 갑옷을 이끌고 이에야스 본진으로 세 차례 결사 돌격해 이에야스의 말표를 쓰러뜨리고 자결 직전까지 몰아붙였으나 힘이 다했다. 야스이 신사 경내에서 쉬던 중 마쓰다이라 다다나오의 철포대장 니시오 무네쓰구에게 목이 베여 장렬히 전사했다. 향년 49세.

「내 목을 베어 공을 세우시오」라고 말하고 조용히 합장해 적의 칼날을 받아들였다.
「전국 시대 최후의 전투에서 패자가 됐지만 적장 시마즈 다다쓰네에게 ‘일본 제일의 무사, 예로부터 이야기에서도 이런 이는 없었다’고 칭송받았다. 400년이 지난 오늘까지 영웅으로 전해지는 기적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