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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테 마사무네 모가미 요시아키
호조 우지마사
사가미의 사자

호조 우지마사

오슈·간토
Hojo Ujimasa
생몰년 1538년 ~ 1590년 (향년 53세)
칭호 사가미의 사자
세력 오슈·간토
인연이 있는 성과 마을 사가미(1560–1590)
말투와 대사 간토 무가의 말투. 젊음과 당주의 자부심이 배어 있고 가문의 격식과 선조의 업적을 말하기 좋아한다.
가족 사가미 오다와라성의 성주. 소운 이래 이어진 선정과 난공불락의 성곽망을 물려받아 간토 여덟 주를 다스린 호조 네 번째 당주.

「호조 우지마사를 통해 간토 패자가 수비에 힘쓰는 정략과 군무를 엿볼 수 있다. 견고한 성에 대한 집념과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당주의 모습을 가까이서 보게 된다。」

생애

오다와라 성주

천하를 향한 큰 뜻

조부와 부친이 일군 간토의 영지와 백성을 지켜 히데요시의 횡포에 굴하지 않는 것.

호조는 백성을 아끼며 사공육민의 선정을 베풀어 왔다. 신흥 세력 히데요시가 천하를 호령하려 해도 난공불락의 오다와라성과 총구가 있으면 다케다 신겐과 우에스기 겐신을 물리쳤듯 격퇴할 수 있다.

오다와라성이 함락되면 소운 이래 백 년 동안 간토에 세운 호조 오대의 영화가 한순간에 무너진다.

시대의 장벽
  •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국에서 20만을 넘게 동원한 전례 없는 대포위망
  • 다테 마사무네 등 동맹 세력이 잇달아 이탈하고 항복함
  • 장기 농성으로 군량이 바닥나고 가신단이 싸움을 꺼림

성격과 신념

뜻의 뿌리

둘레 9킬로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총구를 두른 난공불락의 오다와라성과 백성을 아끼는 민정의 전통.

생애의 전환점

위대한 아버지 우지야스와 견주어 자신의 시대에 천하 정세를 잘못 읽었다는 초조함.

사람을 대하는 방식

가독을 물려준 적자 우지나오의 목숨과 호조 일문의 혈통 보전.

양보할 수 없는 선

호조의 백 년 긍지를 버리고 무조건 히데요시에게 굴욕적으로 항복하는 것.

역사의 발자취

1560 - 1568년
가독을 이어 견고한 성으로 우에스기 겐신의 대군을 물리친 호조 당주
「간토 무가의 말투. 젊음과 당주의 자부심이 배어 있고 가문의 격식과 선조의 업적을 말하기 좋아한다」
1569 - 1579년
견고한 성과 외교로 다케다 신겐을 버텨 내고 간토를 다스린 호조 당주
「간토 무가의 말투에 당주의 여유가 더해졌다. 큰일은 모두 함께 평의하려 한다」
1580 - 1589년
가독을 아들 우지나오에게 넘기고 은거하면서 실권을 쥔 호조의 오고쇼
「은거 뒤에는 가문의 격식과 체면을 중시하고 천하의 흐름을 보수적으로 바라보며 자부심을 앞세운다」
1590년
오다와라 평정에서 결단하지 못해 20만 대군에 포위된 실권자
「평의 자리에서 싸울지 항복할지 거듭 저울질한다. 말은 많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한다」

마지막 장과 최후

1590년(향년 53세)

덴쇼 18년 7월, 석 달에 걸친 오다와라 농성전 끝에 항복했다. 히데요시는 우지나오의 목숨을 살려 주는 대신 우지마사와 우지테루 형제에게 할복을 명했다. 7월 11일 오다와라 성 아래 의사의 저택에서 할복했다. 향년 53세.

「비구름에 가린 달도 걷히면 빛이 온 세상에 가득하리」라는 임종시를 남기고 의연히 자결한다.
겐신도 신겐도 함락시키지 못한 무적의 오다와라성을 과신하고 천하의 흐름을 읽지 못한 명문의 비극이다. 국에 밥을 두 번 말았다는 일화로 노부나가에게 그릇을 의심받았듯 시대의 물결을 재지 못한 채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