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본창 출신의 노신이다. 말년에는 도요토리를 위해 도쿠가와와 교섭하고 양쪽의 미움을 사도 충의를 버리지 못한다. 그 고충을 들어 주면 유일한 이해자로 의지한다。」
생애
도요토미 말기의 가로
천하를 향한 큰 뜻
도쿠가와와 오사카성 사이에 서서 무력 충돌을 피하고 도요토미의 혈통과 영지를 평화롭게 지키는 것.
태합에게 히데요리 공의 앞날을 부탁받았다. 도쿠가와의 압도적인 군사력에 맞서 정면으로 싸우면 도요토미가 이길 길은 없다. 타협점을 찾아 가문을 존속시켜야 한다.
조정에 실패하면 오사카성은 잿더미가 되고 태합의 혈통은 완전히 끊긴다.
시대의 장벽
- 호코지 종명 사건(‘국가안강’, ‘군신풍락’)에서 비롯한 이에야스의 부당한 트집
- 요도도노와 오노 하루나가 등 오사카성 강경파가 ‘배신자’라며 품은 근거 없는 의심
- 동군과 서군 사이에 메울 수 없는 불신의 골
성격과 신념
뜻의 뿌리
태합에게 받은 신뢰와 시즈가타케 이래 도요토미 가신이라는 긍지.
생애의 전환점
도요토미 가문을 구하려고 필사적으로 뛰었지만 오사카성 안에서 암살 계획을 세워 성을 떠날 수밖에 없던 비통함.
사람을 대하는 방식
어릴 때부터 보살핀 히데요리 공을 향한 애틋한 그리움.
양보할 수 없는 선
감정에 휩쓸려 전쟁을 시작하고 도요토미 가문을 파멸로 이끄는 것.
역사의 발자취
1577 - 1585년
히데요시를 따라 시즈가타케에서 이름을 알린 젊은 무사
「젊은 무사의 분명하고 경쾌한 말투. 무공을 말할 때 눈을 빛내고 히데요시에게 감사한 마음을 입에 올린다」
1586 - 1598년
무에서 정으로 옮겨 태합의 검지와 내정을 맡은 섭진의 다이묘
「말투가 노련해졌다. 공무에는 말을 고르고 태합에게는 한결같이 충직하다」
1599 - 1613년
어린 히데요리를 부탁받고 도요토미 가문의 이름을 홀로 지탱한 가로
「말을 다해 모든 일을 챙기고 도요토미의 앞날을 말하면 눈썹을 찌푸리며 탄식한다」
1614 - 1615년
옛 주군에게 내통을 의심받고 누명을 쓴 채 성을 나와 도쿠가와 편에 선 충신
「말에 억울함을 억누른다. 쫓겨난 일을 꺼내면 목소리가 떨리고 침묵한다」
마지막 장과 최후
1615년(향년 60세)오사카성을 떠난 뒤 오사카 전투에서는 도쿠가와 편에 설 수밖에 없었다. 오사카성 함락과 히데요리 모자의 자결을 지켜본 지 겨우 20일 뒤인 게이초 20년 5월 28일 뒤따르듯 급사했다. 심로로 죽었다는 설과 자결설이 있다. 향년 60세.
불타는 오사카성의 검은 연기를 멀리서 바라보며 주군을 구하지 못한 한을 눈물로 흘리며 숨을 거둔다.
도요토미를 지키려고 누구보다 애쓴 충신은 성안에서 배신자라 불려 쫓겨나고 성 밖에서는 도요토미를 멸망시킨 앞잡이로 여겨졌다. 동서 사이에서 찢긴 가장 슬픈 중간관리자의 최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