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살에 오다의 인질이 되었지만 노부나가가 그릇을 알아보고 사위로 맞은 남자다. 무략과 다도, 신앙을 두루 익혔으나 재능 탓에 히데요시에게 오슈로 밀려났고 한창 나이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젊은 날 담력을 기르는 일을 돕고 아이즈의 근심을 나누며 고향을 떠난 옛 신하를 지켜 주면 뒷일을 맡길 식구로 대해 준다。」
생애
오슈 아이즈의 주군
천하를 향한 큰 뜻
아이즈 구로카와를 오슈의 도읍으로 가꾸고 무용·다도·기독교 신앙이 조화를 이루는 이상적인 나라를 세우는 것.
어린 시절 노부나가의 인질이 되었지만 비범한 그릇을 인정받아 사위로 맞아들여졌다. 히데요시가 재능을 두려워해 동북으로 밀어내려 해도 북국의 요충지에서 천하에 견줄 대국을 세우려 한다.
오슈의 다테 마사무네 등 불온한 호족들을 억누르지 못하면 도요토미 정권 동쪽의 요충지가 무너진다.
시대의 장벽
- 다테 마사무네의 끝없는 야심과 가사이·오사키 잇키의 배후 공작
- 히데요시의 깊은 경계심과 가혹한 동원령
- 과로와 원정으로 점점 약해지는 자신의 건강
성격과 신념
뜻의 뿌리
센노 리큐의 수제자 ‘리큐 시치테쓰’의 필두로서 세련된 미의식, 세례명 레온으로서의 고결한 신앙심.
생애의 전환점
아이즈 92만 석을 받았을 때 「넓은 영지를 얻어도 도읍에서 멀어지면 천하를 노릴 수조차 없다」며 눈물을 흘린 한.
사람을 대하는 방식
스스로 진두에 서서 음식을 만들고 목숨을 맡겨 준 가신단을 향한 따뜻한 애정.
양보할 수 없는 선
문화의 향기를 잃고 거친 무사로만 전락하는 것.
역사의 발자취
1568 - 1581년
오다의 인질이 되었지만 노부나가에게 그릇을 인정받아 사위가 된 히노의 젊은 무사
「오미 사투리로 맑고 또렷하게 말한다. 무와 뜻을 조리 있게 논하며 자기 그릇을 아는 젊은이의 오만함이 있다」
1582 - 1589년
혼노지의 변 뒤 노부나가의 유족을 지키고 히데요시를 따랐으며 마쓰사카성을 쌓고 세례를 받은 이세의 장수
「오미 사투리로 침착하게 말한다. 무와 다도, 신앙을 조리 있게 논하고 은혜와 의리에는 진심을 보인다」
1590 - 1593년
아이즈 92만 석을 받고 구로카와를 와카마쓰로 고쳐 부르며 쓰루가성을 쌓은 오슈의 수호자
「오미 사투리로 침착하게 자리를 장악한다. 오슈를 질서 있게 다스리고 터전과 옛 신하를 이야기할 때 특히 정중하다」
1594 - 1595년
재능을 펼칠 전성기에 병을 얻어 후시미에서 위병으로 쓰러진 아이즈의 주군
「오미 말씨에 병색이 묻어난다. 뒷일과 옛 신하를 한마디 한마디 절실하게 말하며 때때로 한을 드러낸다」
마지막 장과 최후
1595년(향년 40세)분로쿠 4년 2월 7일 후시미 저택에서 급서했다. 위암이라는 설과 재능을 두려워한 히데요시나 이시다 미쓰나리가 독살했다는 소문이 있다. 향년 40세.
「끝이 있기에 불지 않아도 꽃은 지는구나, 마음 급한 봄 산바람이여」라는 임종시를 남기고 너무 이른 죽음을 아쉬워하며 떠난다.
무용과 지략, 교양과 인망을 모두 갖추어 노부나가와 히데요시도 두려워한 완벽한 영주가 마흔의 나이에 병으로 쓰러졌다. 우지사토가 살아 있었다면 세키가하라의 양상도 달라졌을 것이라 할 만큼 요절이 안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