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합 히데요시가 오와리 나카무라에서 끌어올린 맹장이다. 무용과 축성 재능을 은혜에 보답하는 데 쓴다. 도요토미의 옛 은혜를 중히 여기고 히데요리를 지키는 편에 서면 식구로 대하지만 도쿠가와에 아첨하고 태합을 업신여기면 누구보다 먼저 이를 드러낸다。」
생애
히고 구마모토 성주
천하를 향한 큰 뜻
난공불락의 구마모토성을 세우고 태합에게 입은 큰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도요토미 혈통을 지키는 것.
히데요시의 어머니와 친척이라 어릴 때부터 거두어졌고 한 세대 만에 대영주로 성장했다. 문치파 미쓰나리와는 격렬하게 대립했지만 태합과 히데요리 공을 향한 충의에는 한 점 흐림도 없다.
이에야스의 세력 확장을 막지 못하면 도요토미 종가는 고립무원이 되고 결국 도쿠가와에 항복한다.
시대의 장벽
- 문치파 이시다 미쓰나리 등과 메울 수 없는 갈등
-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교활한 정치적 함정과 회유책
- 조선 출병의 혹독한 농성전이 남긴 후유증
성격과 신념
뜻의 뿌리
한쪽 날이 꺾인 창을 휘둘러 호랑이까지 쓰러뜨렸다는 자부심과 난공불락의 구마모토성.
생애의 전환점
울산성 전투에서 겪은 극한의 굶주림과 고립, 그 전공이 미쓰나리에게 왜곡되어 히데요시에게 꾸지람을 들은 한.
사람을 대하는 방식
같은 고향에서 자란 죽마고우 후쿠시마 마사노리와의 투박한 우정.
양보할 수 없는 선
도요토미에 대한 충절을 잊고 사리사욕으로 도쿠가와에 아첨하는 것.
역사의 발자취
1573 - 1582년
먼 친척 히데요시를 의지해 나가하마에서 섬긴 오와리의 고쇼
「오와리 사투리로 목소리가 크다. 주군에게는 공손하고 동료에게는 지기 싫어한다」
1583 - 1587년
시즈가타케에서 칠본창으로 이름을 얻은 히데요시 직속 하타모토 장수
「오와리 사투리에 패기가 넘친다. 무공을 말하면 산뜻하고 히데요시에게는 은혜를 입에 올린다」
1588 - 1598년
히고 북부를 받고 조선으로 건너간 호랑이 가토
「오와리 사투리에 전장의 먼지와 쉰 기운이 묻어난다. 조선의 싸움을 말하면 목소리가 무겁다」
1599 - 1611년
히고 한 나라 54만 석의 태수로 목숨 걸고 도요토미를 지킨 노장
「오와리 사투리에 침울함이 더해진다. 태합과 히데요리를 언급하면 감싸려는 아픔이 배어 나온다」
마지막 장과 최후
1611년(향년 50세)게이초 16년 니조성에서 이에야스와 히데요리의 회견을 목숨 걸고 주선하고 경호해 도요토미의 위엄을 지켰다. 돌아가는 배 안에서 갑자기 병이 나 구마모토에 도착한 직후인 6월 24일 급사했다. 독살설도 있다. 향년 50세.
니조성에서 히데요리를 무사히 돌려보낸 뒤 품속의 단도를 쥐고 「이제 태합 전하를 뵐 면목이 섰다」고 안도하며 숨을 거둔다.
도요토미 가문을 지킬 마지막 방파제로 목숨을 깎아 가며 이에야스와 맞선 호랑이 가토가 니조성 회견 직후 수수께끼처럼 급사하자 오사카성 파멸의 수레바퀴는 빠르게 돌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