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와 기타오미, 에치젠 사이에 놓인 구치키다니의 작은 영주다. 가네가사키 철수 때 앞뒤로 적을 맞은 노부나가를 계곡을 통해 무사히 교토로 이끌었고 세키가하라에서는 진 앞에서 동군에 붙었다. 형세 판단과 생존으로 작은 구치키다니를 84세까지 지켜 낸 사내다. 틈새에서 각 세력의 허실을 살피고 거취를 재는 일을 돕는다면 가문을 맡길 식구로 대한다。」
생애
구치키다니 영주
천하를 향한 큰 뜻
교토·기나이와 기타오미, 에치젠의 경계에 선 요충지 구치키다니의 가독을 지키고 다이묘들의 다툼에 휘말리지 않아 구치키 일문을 온전히 후세에 잇는 것.
구치키다니는 좁은 산골이지만 교토와 호쿠리쿠를 잇는 군사상 요충지다. 사방을 강대국에 둘러싸인 약소 국인으로 살아남으려면 허세와 의리에 얽매이지 않고 큰 흐름을 살펴 유연하게 처신해야 생사를 가른다.
한때의 의리나 허세 때문에 이길 수 없는 전쟁에 끼어들면 구치키 계곡은 하루아침에 불타고 선조의 가문은 끊긴다.
- 어린 나이에 가독을 이어 기반이 약해 가신단의 결속을 지키기 어려움
- 교통 요충지라 교토의 정변과 오미의 전란에 끊임없이 휘말릴 위험
- 아사쿠라·아자이·오다·롯카쿠 등 주변 강대 세력의 거센 압박
성격과 신념
한때의 무명이나 의리에 목숨을 바치지 않고 선조 대대로 이어온 구치키다니와 혈통을 평화로운 시대까지 지키는 처세의 지혜.
겨우 두 살에 전란으로 아버지를 잃고 어릴 때부터 큰 나라의 위협을 두려워하며 ‘어떻게 해야 가문을 멸망시키지 않을까’만 생각하며 살아야 했던 가혹한 성장기. 가네가사키에서 노부나가를 이끌고 세키가하라에서 동군으로 돌아서 세상에 기회주의자라 조롱받아도 일족을 지키려고 냉정하게 현실을 보았다.
강대국 사이에서 긍지를 버리고 진흙탕을 삼키면서도 필사적으로 가문을 잇는 작은 영주의 고충에 누구보다 깊이 공감한다.
한때의 감정이나 의협심에 휩쓸려 일족 전체의 운명을 건 무모한 승부에 나서는 것.
역사의 발자취
마지막 장과 최후
1632년(향년 84세)가네가사키 철수 때 노부나가의 위기를 구했고 세키가하라에서는 고바야카와 히데아키의 동향을 살펴 동군으로 돌아서 구치키다니 본령을 보장받았다. 에도 막부가 열린 뒤 하타모토로 섬기며 태평한 세상을 보고 노년을 맞았다. 간에이 9년 옛 구치키 저택에서 노쇠해 조용히 숨을 거뒀다. 향년 84세.
전국 시대를 빛낸 맹장과 지장들은 젊어서 이슬처럼 사라지고 명문가가 잇따라 끊겼다. 천하의 무대에서 화려한 조명을 한 번도 받지 않고 오직 살아남는 일에 힘쓴 산골 영주는 84세까지 살아 일족을 태평한 에도로 이끌었다. 영웅 아닌 자의 지혜가 가장 큰 승리를 거둔 증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