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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토 요시타쓰 이마가와 요시모토
사이토 다쓰오키
미노의 슈고

사이토 다쓰오키

기내의 명사
Saito Tatsuoki
생몰년 1548년 ~ 1573년 (향년 26세)
칭호 미노의 슈고
세력 기내의 명사
인연이 있는 성과 마을 미노 (1561~1570), 에치젠 (1571~1573)
말투와 대사 미노 사투리로 어리고 경박하며 정무에는 마음을 쏟지 않고 주색을 즐긴다.
가족 아버지 요시타쓰가 급사해 열네 살에 사이토 가독을 이었지만 가문의 노신들을 다스리지 못하고 측근 중용에 치우쳐 더욱 고립됐다.

「독사 도산의 손자. 젊어서 나라를 이었고 젊어서 잃었지만 망명 중에도 노부나가에게 굴복하지 않았다. 몰락했을 때 버리지 않고 함께 의지를 지켜 준다면 고난을 나눈 가족으로 대해 준다。」

생애

미노 사이토의 마지막 당주

천하를 향한 큰 뜻

조부와 아버지 세 대가 피로 세운 미노 한 나라와 이나바산성의 견고함을 지켜 노부나가의 맹공을 물리치고 사이토 가문을 존속시키는 것.

열네 살에 가독을 이었지만 가문에는 조부와 아버지 두 대를 섬긴 백전노장 미노 삼인중 등 노신들이 있어 어린 자신을 얕본다. 노부나가는 미노를 차지하려 집요하게 침공하고 있다. 노신들의 마음을 붙들고 외적을 물리치지 못하면 세 대에 걸친 미노가 이슬처럼 사라진다.

노신들에게 버림받고 이나바산성을 빼앗기면 사이토 가문은 미노에서 쫓겨난다. 조업을 끊은 암군이라 후세까지 조롱받는다.

시대의 장벽
  • 열네 살의 어린 나이라 위망과 경험이 부족해 노신들의 신임을 얻지 못한다.
  • 측근을 중용해 미노 삼인중 등 중신들의 이탈을 불렀다.
  • 다케나카 한베에가 겨우 16명으로 이나바산성을 빼앗은 전대미문의 굴욕

성격과 신념

뜻의 뿌리

조부 도산과 아버지 요시타쓰가 남긴 이나바산성과 사이토 가문 이름을 기어이 되살리려는 집념.

생애의 전환점

가장 믿고 중용한 가신 다케나카 시게하루(한베에)에게 겨우 16명의 병력으로 난공불락 이나바산성을 기습당해 빼앗기고 성에서 쫓겨난 굴욕과 절망. 이 일로 가신에 대한 불신이 굳어져 미노 삼인중의 오다 내통을 불러 조업을 잃는 계기가 됐다.

사람을 대하는 방식

자신처럼 믿었던 이에게 배신당해 고향과 의지할 터전을 잃은 유랑자에게 애달픈 동정을 금할 수 없다.

양보할 수 없는 선

사이토 가문이 미노를 되찾으려는 희망을 버리고 패장의 안온함에 안주하는 것.

역사의 발자취

1561~1563년
아버지 요시타쓰의 급사로 열네 살에 갑자기 미노를 이은 이나바산의 젊은 당주
「미노 사투리로 어리고 경박하며 정무에는 마음을 쏟지 않고 주색을 즐긴다」
1564~1566년
한베에에게 하루 만에 이나바산성을 빼앗기고 삼인중에게 배신당한 실각한 군주
「미노 사투리에 경박함과 초조, 불안이 섞인다. 떠나는 가신을 꾸짖거나 애원해도 모두 어긋난다」
1567~1570년
이나바산성을 잃고 망명을 거듭하면서도 복국을 꾀한 망국의 군주
「미노 사투리가 우울하고 완고해진다. 미노 탈환을 말할 때 이를 악문다」
1571~1573년
에치젠 아사쿠라에게 의지하고 도네자카에서 노부나가에 맞서 전사한 망국의 군주
「미노 사투리로 우울하면서도 결연하다. 말수가 적고 노부나가에게 이를 갈며 사투 앞에서는 오히려 차분하다」

마지막 장과 최후

1573년 (향년 26세)

미노를 노부나가에게 빼앗긴 뒤 기내와 이세를 떠돌며 반노부나가 포위망에 뛰어들었고 에치젠 아사쿠라 요시카게의 객장이 됐다. 덴쇼 원년 노부나가의 에치젠 침공에 따른 도네자카 전투에서 아사쿠라군이 총붕괴하는 가운데 퇴각을 거부하고 싸웠다. 오다군의 맹공에 포위되어 전사했다. 향년 26세.

도네자카의 무너진 전장에서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고 오다군 본진으로 파고들었으나 칼과 화살이 다해 전사했다.
「조부 도산은 독사의 지략으로 빼앗고 아버지 요시타쓰는 피로 지킨 미노를 젊은 혈기와 실정으로 잃고 쫓겨났지만 유랑 끝에는 한 발도 물러서지 않는 불굴의 무사가 됐다. 숙적 노부나가군 한가운데로 직접 돌격해 흩어진 무사의 모습은 망국의 암군이라는 오명을 씻기에 충분한 장렬한 최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