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애를 잃은 마타자에몬에게 젊어서 시집가 녹봉을 끊긴 날도 함께 견디며 가가 백만 석까지 마에다 가문을 도왔다. 도시이에가 죽은 뒤 가문이 의심받자 스스로 에도에 인질로 가 일족을 지켰다. 힘든 때 곁을 지키고 가독 위기를 나누면 속을 터놓는 식구로 대한다。」
생애
가가 백만 석의 어머니
천하를 향한 큰 뜻
무예만 아는 남편 도시이에를 재치와 배짱으로 뒷받침해 난세를 넘어 마에다 가문의 백만 석과 이름을 온전히 지키는 것.
도시이에가 노부나가에게 추방당한 극빈의 시절에도 갑옷을 전당포에 맡겨 남편을 도왔다. 히데요시 사후 이에야스와 대립할 위기에 놓인 마에다 가문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도 아깝지 않다.
마에다 가문이 도쿠가와에게 반역 의심을 사면 가가 백만 석은 한꺼번에 몰수되고 일족은 멸망한다.
시대의 장벽
- 도시이에 사후 이에야스가 마에다 가문을 집요하게 압박하며 가가 정벌을 위협함
- 장남 도시나가의 젊은 나이에서 비롯한 고뇌와 가문 안의 동요
- 스스로 에도에 인질로 가는 일에 대한 가신들의 반대
성격과 신념
뜻의 뿌리
남편 도시이에와 함께 세운 가가 마에다 가문의 이름과 스스로 에도에 인질로 가겠다고 나선 기개.
생애의 전환점
도시이에가 죽은 직후 이에야스에게 암살 주모자로 의심받아 가문이 존망의 위기에 놓인 공포.
사람을 대하는 방식
가난한 신혼 시절 함께 웃고 울며 의지한 남편 도시이에를 향한 비할 데 없는 정.
양보할 수 없는 선
겁을 먹고 도쿠가와에 굴복해 마에다의 무명을 더럽히는 것.
역사의 발자취
1558 - 1581년
총애를 잃고 녹봉이 끊긴 마타자에몬에게 젊어 시집가 고난을 함께한 아내
「오와리 사투리로 부드럽게 말한다. 젊은 아내의 굳은 심지가 배어 있고 살림살이를 꼼꼼히 이야기한다」
1582 - 1597년
마에다 가문이 가가 백만 석으로 성장하고 많은 자녀를 기른 안주인
「오와리 사투리가 차분해지고 자녀의 혼인과 가문 사이의 교류를 정확히 말한다」
1598 - 1599년
히데요시와 도시이에가 잇달아 죽고 가문이 의심받아 가독 위기에 선 안주인
「오와리 사투리에 슬픔을 억누른다. 가문의 존속을 말할 때 무게를 싣는다」
1600 - 1617년
스스로 14년 동안 에도에 인질로 가 가가 백만 석을 지킨 호슌인
「오와리 사투리에 세월의 온화함이 묻어난다. 마에다 가문의 존속과 혈육을 담담하고 분명하게 이야기한다」
마지막 장과 최후
1617년(향년 71세)스스로 에도에 인질로 내려가 14년 동안 머물며 마에다 가문의 위기를 구했다. 오사카 전투 직전 가나자와로 돌아왔고 겐나 3년 7월 16일 가나자와성에서 평온히 세상을 떠났다. 향년 71세.
「이제 도시이에 님을 떳떳한 얼굴로 만날 수 있겠구나」라며 웃고 가가 마에다 가문의 안녕을 지켜본 뒤 안도하며 숨을 거둔다.
남자들이 칼을 뽑고 두려워한 이에야스의 압박 앞에서 스스로 「내가 인질로 가면 될 일」이라 말하고 에도로 향해 말 한마디로 가문을 구했다. 전국 시대 최고의 배짱을 지닌 아내가 이룬 쾌거였다.